"그 자리가 바로 빛이 들어오는 곳입니다"
금이 간 유리창처럼, 상처는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우연히 접한 예일대학교의 캠퍼스 이야기 한 토막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예일대는 미국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캠퍼스로 손꼽힌다. 그 중심에는 신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있다. 돌로 쌓아올린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300년 전의 시간 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 대학이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세월이 만든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그 속에 담긴 진심 어린 태도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의 유리창을 수선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금이 간 유리를 떼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했을 것이다. 더 튼튼하고, 에너지 효율도 뛰어나며, 작업도 간편하다. 그런데 예일은 그런 '효율'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깨어진 유리 조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금이 간 자리를 보강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도 대충 때우는 방식이 아니라, 원래의 유리 프레임과 동일한 재료를 이용해, 증기를 부드럽게 쏘아가며 섬세하게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창문 하나에, 그들은 마음과 시간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문득 일본의 전통 공예인 긴쓰기(金継ぎ)가 떠올랐다. 긴(금)과 쓰기(이어 붙이다)의 조합. 그릇이 깨졌을 때, 옻으로 조심스레 이어붙이고 그 위에 금분을 뿌려 장식하는 방식. 단지 복원하는 것을 넘어, 깨짐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금이 간 자국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릇을 더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이 된다.
긴쓰기에는 어떤 깊은 철학이 숨어 있다. 결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결함을 마주보고, 인정하고, 품는다.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이전보다 더 깊고 강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단순한 수리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다.
예일의 유리창과 일본의 긴쓰기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비롯됐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처를 감추지 말라는 것. 그리고 상처 위에, 조심스럽고 정직한 손길로 다시 삶을 새기라는 것.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마음에 금이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소중했던 꿈의 좌절,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 혹은 그저 쓸쓸하게 느껴지는 어떤 하루.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금을 낸다.
어쩌면 그것이 삶이라는 긴 여정을 통과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금을 감추고 싶어진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 유리를 끼우듯, 새 그릇을 사듯, 아픔을 지우고 싶어진다.
하지만 진짜 회복이란,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국을 품고 살아가는 데 있다.
깨진 조각들을 모아 다시 붙이고, 금을 입히듯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서고, 다시 걷고, 다시 웃을 수 있다.
마음의 회복도 결국은 '수선'이다.
낡고 찢긴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꿰매고 이어붙이는 일.
어떤 날은 잘 붙지 않아 좌절할 수도 있다. 어떤 날은 더 찢어지는 것 같아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수선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금이 문득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이렇게 아팠고, 이렇게 견뎌냈고, 그래서 지금 여기 서 있구나.
상처 난 마음을 품는다는 건, 단순히 '참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깊은 배려이고, 용기다.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고, 다시 웃을 수 있는 온기다.
나는 예일대학교의 유리창을 생각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낡은 것을 무조건 버리지 않고, 보이는 결함조차 품고 살아가는 삶.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 가치.
그 유리창 하나가,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건축가 루이스 칸의 말처럼, “빛은 벽의 결을 통해 들어온다.”
빛은 완전한 유리창보다, 금이 간 틈으로 더 깊숙이 스며들지도 모른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그곳이 바로 빛이 들어오는 자리다.
우리가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삶을 안아주는 자리다.
그러니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 어딘가가 금이 가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자리를 덮지 말고, 그대로 들여다보자.
그리고 천천히, 나만의 긴쓰기를 시작하자.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그 자리가 삶에서 가장 빛나는 금빛 자국이 되어 있을 테니까.